숲속에 깔린 지도/김덕진
냉기가 몰려드는 저녁나절
어둑한 숲속의 내장을 들여다보았다
솔잎이 빗어내는
바람의 숨소리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현의 음 색깔이
봇물처럼 쏟아져 흘렀다
작은 숲길에 찍어 놓고 떠나간 발자국위로
하얀 어둠이 겹치기 시작했다
누가 최초로 이 숲에 지도를 만들어놓았는지
땜질한 궁금증이 비눗방울처럼 떠다녔다
길 위에 뿌려진 발자국들은
땅속에 박힌 나무의 혈관을 끄집어냈고 나는
그 혈관의 등을 타넘었다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옆 바위 밑에서
투박한 사기제기들이 이끼 낀 세월을 깔고 앉아있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누가 맨 처음 여기에 지도를 깔아놓았는지
내가 밟고 서있던 곳은 원주민들이 산제를 올리며
소망의 탑을 높이 쌓았던 성지
하늘을 떠받치기 위해 만들었던 지도의 색깔은
이미 오래전에 퇴색되었다
나뭇가지를 쓰다듬고
지도위에 떨어진 달빛이 동그란 징검다리가 되어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날 밤 흐릿해진 마음의 지도에 색깔을 입히려고
묵은 밤을 끌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