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지렁이/김덕진
뼈 한 조각 몸속에
지니지 못한 운명을 받아들였으나 늘 서러웠다
탈골된 뼈를 맞추는 전문의의 손가락 관절 굽는 소리도
풍화한 뼈를 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편도
땅속 어둠을 건드린 적 없으나
수직으로선 벼랑을 건너는 일은 뼈만이 할 수 있음을 알기에
땅속으로 젖은 구름냄새가 스미는 날은 본능이 눈을 뜬다
때가 되어도 쉽게 헐리지 않는 암흑속의 흙집으로
빗방울의 부음을 들여놓는 날은 마음이 몹시 설레나보다
세상의 모든 길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있다
어쩌면 되돌아 올 수 없는 마지막 외출이 될 수도 있지만
험한 길을 베끼러
몸속에서 잠든 무엇인가를 깨우러 관속 같은 어둠을 찢고 길을 다진다
분명 온몸의 수분을 태워야 할 이유가 있을 터
물렁한 육체의 옷이 거추장스럽다
은자처럼 길에서 길을 얻고
누군가 남긴 발자국위에 바싹 마른 검불 하나 남기기 위하여
몸을 뒤척이며 수분을 턴다
지렁이가 밑줄 친 자리, 햇살의 매듭이 풀린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의 둘레를 재다가 문득 (0) | 2021.11.18 |
---|---|
초승달에게 묻는다 (0) | 2021.11.11 |
새벽시간의 비늘을 벗기고 (0) | 2021.10.28 |
두고 온 그림자 (0) | 2021.10.20 |
이안류 (0) | 2021.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