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몸살/김덕진
강의 이름이 지워지는 곳에 이르면
나는 붉은 몸살을 앓는다
빗방울 속에 든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강바닥에 누운 하얀 뼈들이
서로 가슴을 비비며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
물에서도 콩나물처럼 입술 타는 목마른 뼈,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던 물소리를 태우고
물의 뼈를 깎아 피리를 불었다
바다가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끊임없이 해안선을 적시는 바다의 울음 섞인 획이 솟구쳐오를 때마다
노숙하던 파도가 한 페이지씩 넘어갔다
나는 여기서 지상의 길을 닮은 또 다른 말을 배웠다
목마른 달이 바다를 훔쳐가는 소리,
그것은 죽음을 모르는 물의 몸부림으로 빚은
간이 배어있는 언어였다
바다의 정수리를 끌어안은 태양의 따뜻한 포옹,
이름을 버린 강의 호흡이 바뀌었다
세상을 받아들이느라 뜨거운 몸살을 싹틔우는 바다의 말을 듣기위하여
나는 오랫동안 귀를 열어 놓았다
해안을 주무르는 파도소리 배냇저고리처럼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