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김덕진
벽에 걸린 시계하나 떼었을 뿐인데
벽시계의 초침이 밤과 낮을 잘게 썰던 소리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아
벽의 자유를 구부러트린 듯 공허하다
두꺼운 침묵을 덧칠한 하얀 벽의 양식은 마치
황량한 벌판이 품은 적의처럼 차겁다
초침이 스캔한 하루하루의 숨소리 색깔은 매번 다른 것이어서
무너지는 모래언덕에 이름을 묻을 수 있었다
사람보다 앞서 나왔을지 모를 쓰러진 풀잎위에
핏기 없는 이름을 얹을 수 있었다
세상에 풀어놓은 시간의 숨소리에서
때로는 환하고 때로는 어두운 우주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계량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로 부식되어가는 이름위에
풀지 못한 방정식이 남아있다
하늘과 땅이 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어서
울음 참는 연습이 필요했다
날을 새어 모래사원을 짓다가 부수며 우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내가 삼켜야 할 회오리가 남아있다
내 이름이 제자리를 잡아가려면
나는 아직도 조금은 더 흔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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