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실/김덕진
오르간 반주음의 무늬가 사라졌다
이따금 내 귀에 물꼬를 터줬던 그 방이었는데
또 침묵이 촛불처럼 타오른다
세입자가 떠나간 텅 빈 방의 색깔에서
이질감이 묻어난다
세입자가 남긴 흔적을 지우는 일은 수취인 불명의 바람을 부치는 것이어서,
허공에 깔아놓은 꿈을 다지며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라서 눈동자가 어제 삼킨
일몰의 해를 건져 올렸다
조급한 기다림이 주름진 층을 이루기전에
바람의 행방을 고민하지 않고
무너진 고성의 이끼긴 돌을 먼저 생각했다
눅눅한 그늘을 베고 모로 누운 머릿돌 같은 돌의 풍경,
얼마나 무게 있고 여유로운 모습인가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상처 난 날개로 날아간 사람,
또 어느 곳에서 묘비명 같은 오르간음색의 무늬를 흘릴까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의 날개에 숨긴 상처를 보았다
그녀의 이 빠진 시간이 징처럼 울렸다
방안에 버려진 것들의 질서, 그녀는 방안에 사막의 향기를 남기고 날아갔다
나는 이끼긴 돌의 풍경을 닮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