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연기

김덕진요셉 2011. 10. 18. 12:13

                    젖은 연기/김덕진


오후 내내 휴대전화의 벨소리가

한 번도 울리지 않더니

회색빛깔을 입은 문자메시지의 도착 신호음이

차갑게 귀속을 후벼 팠다 

개인 정보를 훔쳐간

어느 대부업체의 대출안내문자일 것이라는 예감으로

신경세포의 수분이 마르고 마음에는

각이 뾰족한 모서리가 돋았다

바람을 감아 말은 멍석 같은 호기심에 돌돌 말려

수신된 메시지를 확인하였을 때

상실감의 공간을 힘들게 메워야 할 누군가의 멍든

아픔이 짧은 안내 문자위에 얼룩져있었다

슬픔에 체한 그들의 먹먹한 가슴,

얼마나 오랫동안 두드려야 뚫리게 될지는

오로지 시간밖에 모른다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의 딸이었던 여자 동창의 부음,

노란 수의에 감긴 문자메시지가

회색하늘에 문신이 되어 박혔다

아직도 연주해야할 인생의 악보가 꽤 많이 남았는데

미완의 연주를 마친 그녀에게 악보도 음표도

젖은 연기가 되었다

모서리가 돋았던 마음에 하얀 국화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