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나기, 빗질하고 떠난 자리

김덕진요셉 2012. 10. 14. 09:33

 

      가을 소나기, 빗질하고 떠난 자리/김덕진

 

한낮 컴컴한 허공에 새겨진 균열이

비를 초대하였다

세찬 바람을 업은 빗줄기에 우산살이 휘어져

조그맣게 오그라들었고

우산 속에서 땅만 보며 뛰는 사람들의 등도 둥글게 말렸다

비스듬히 서서 떼를 지어 자결하는 빗방울의 함성은

심한 엇박자의 난타공연

빗물 위를 절룩거리며 뛰어다니는 느낌표마다

하늘의 냄새를 터뜨렸다

세상이 온통 하늘냄새에 푹 젖었다

물에 풀린 수많은 발자국들의 행방은

서로 다른 바다의 변방

검은 소름 돋은 하천의 입이 먼저 삼켰다

가을을 겸손하게 건너기 위해

비바람 속에서 윤곽이 희미해진 사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남의 공장사무실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동안 흠뻑 젖은 바지 단으로 여울목 같은

포용의 물결이 맴돌았다

 

소나기가 빗질하고 떠난 자리로

햇살의 문양이 번지고 가을은 또 하나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