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마는 손

김덕진요셉 2012. 12. 29. 10:06

                      김밥 마는 손/김덕진

 

좌회전 신호대기 중 왼편에 있는

작은 상가에 시선을 꽂았다

세월을 다듬어 온 잰 손놀림이 유리창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녀의 손이 다듬고 있었던 것은

바다와 땅이었다

오랜 시간 바다를 빗질하고 털어낸

마른 이끼위로 변주된 포만감이 책갈피처럼 펼쳐졌다

비와 바람과 햇살을 포개 담은

흰 밥알위에 야채밭을 얹고

갈매기울음소리 섞인 바다를 그녀가

둘둘 말기 시작했다

땅과 바다를 결합하여 원을 그리는 손가락에서

꿈의 지도가 부풀어 올랐다

원에 박힌 내 눈의 구심력이

오랜 이미지의 뿌리를 더듬고 있을 때

뒤차의 경적이 나를 몰아 붙였다

정지신호는 좌회전으로 바뀌었고 앞차는 멀리서 원을

굴리며 작아지고 있었다

 

동그라미 속의 나

나도 바다에 말린, 수분을 담은 땅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