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김덕진요셉 2013. 5. 2. 18:46

                             아무도 모른다/김덕진

 

그 집 텃밭이 수상하다

봄의 품이 넉넉하게 벌어지는 소리 부풀어

동공 깊숙이 찌르나

그 집 텃밭은 작년가을에 판화처럼 찍힌 발자국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노을 걸린 침묵의 수위(水位)에 철지난

여자목소리 얹혔다

그림자 베어 먹은 밑 둥의 피는 말랐으나

꽉 움켜쥔 흙은 놓지 않는다

매년 봄이면 흘러내리는 햇살을 등에 업고 출연하였던

텃밭스크린 속 여주인공은

배경 없는 스크린 안에 더 이상 들어있지 않았다

자루 삭은 낡은 소품, 호미를 쥐고

호미를 닮아가던

허리 굽은 여주인공의 흙 고르던 소리도

싹을 틔우지 못했다

 

유모차에 매달린 호미 닮은 허리

봄 햇살로 지지고 있다

병색으로 풍화한 그녀의 시선이 텅 빈 텃밭에 빠졌다

쉼표를 무시하고 불투명한 시간을

앞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무도 몰랐다

 

지난겨울 그녀는 하얀 스크린 밖으로 완전히 걸어 나왔다

회한으로 절여진 배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