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술을 몰고 온다

김덕진요셉 2014. 5. 30. 11:20

 

                         비는 술을 몰고 온다/김덕진

 

한동안 땅이 목말랐다

착한 비 자결하는 소리, 환한 눈부심으로 몸에 박힌다

단비를 맞으며 친선족구시합을 마친 사람들이

천막 안으로 모여 갈증 난 술병을 연신 새것으로 갈아 치운다

체내에 축적된 알코올농도에 비례하여 목소리의 면적이 부풀어 오른다

술로 빚은 이야기 속을 넘나들며

마음의 영토를 확장하고 서로의 경계선에 말뚝을 박는 중이다

내일 아침이면 허망하게 뽑힐

알코올을 부어 만든 말뚝이다

 

비의 투신이 아름다운 것은 탄생과 종말의 미묘한 균형 때문이다

 

어둠속에서도 빗방울의 자결이 집까지 따라왔다

술의 색깔은 누구에게도 위장가면을 씌우지 않아서 좋다

내가 꽂은 말뚝,

지구의 울타리를 넘어 작은 별의 해안선에서 출렁인다

저녁의 음계를 밟는 도구소리 환하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만 밟을 수 있는 못자리안의 음계,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였다

못자리 속 덜 자란 모, 그들도 그들의 못자리를 설계하고 있는 중이다

 

빗방울의 투신을 목마름처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