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악장 끄트머리
김덕진요셉
2015. 1. 16. 11:09
5악장 끄트머리/김덕진
나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내가 평생 협연해야 할 악보를 가지고 나왔다
한해의 마지막 날 끄트머리
햇살처럼 누구에게나 뿌리진 밤은 공평해서 좋았다
밖의 컴컴한 어둠은
모든 사물을 연탄색깔로 입혀 연탄아궁이처럼 따뜻해 보여서 좋았다
가족과 함께 송년파티를 마치고 설거지를 돕다가
유리컵을 싱크대 안에 떨어트렸다
한순간 튀어 오른 유리컵의 비명을 보았다
밤의 지층이 보리밭처럼 일렁였고
핏방울이 허공에 맺혔다
허공을 가른 유리컵의 비명으로 내 삶의 5악장이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협연을 끝내지 못한 5악장의 악보는 산산조각 비산(飛散)하여
공중에서 너덜거렸다
나에게 길들여진 펜의 무게보다 익숙한,
비탈진 꿈의 설익은 무게로 악장을 넘길 때마다
해진 꿈의 배후에 통점을 남겼다
내 안에서 싹을 틔우지 못한 수많은 음표들이 삭은 동아줄에 매달리다
부음을 알리는 획을 긋고 지구의 등에 운석처럼 박혔다
이미 광속으로 멀어져간 다섯 개의 악장,
협연해야 할 악보가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지만
내일은 새 악장이다
내일은 새 하늘 새 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