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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킬모자와 노인

김덕진요셉 2018. 5. 30. 14:23

다킬모자와 노인 /김덕진  

 

검은 모자를 쓰고 보호자 없이 내 앞을 지나가는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구름계단을 밟고 지하1층까지 내려왔음이 확실했다

손에 쥔 적막한 도구, 지팡이의 무게로 노을 묻은 발걸음을 이끌고 재생될 수 없는 시간을 스캔하는

병원 방사선과 대기실에 발자국을 심는다

초점 잃은 눈동자 속 크레바스를 통과하는 그의 발걸음에 해일이 일어났다

휘어진 레일을 휘감은 빈 가슴의 공명

하늘과 땅이 뒤바뀐 공간속에서  잃어버린 바다의 아침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존재에 아무도 시선을 포개지 않았고, 누구도 말을 얹지 않았다

낯선 외로움의 절벽에 갇힌 그는 무덤 속 같은 고요만 그의 발등에 수북이 떨어뜨렸다

그가 지상에 뿌린 발자국이 점점 희미해지고 그가 앞으로 밟아야 할 지도가 점점 줄어드는 두려움으로

간호사가 대기 환자 호명하는 소리도 자신의 그림자 자르는 소리로 들었다

그의 검은 모자에 박힌 글자를 보았다

다 킬”(니들 다 죽었어)

그러나 다 킬하기에는 그의 해가 너무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가 제작한 영사기 필름이 수분없는 모래바람 날리며 거의 다  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