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파묘
김덕진요셉
2018. 9. 13. 13:49
파묘/김덕진
1.
무덤 속에 뜬 태양을 끄는 날이다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에 포클레인의 굉음소리 채근하며 달라붙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래서 모든 이름들이 혼돈의 저녁 꽃으로 시들어버리고
검게 허물어진 흔적만을 그려놓았다
무덤 속 태양을 끄기 전에 핏줄로 묶여있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가
술잔을 올린다
허공을 더듬는 포클레인의 궤적으로 침묵의 틈이 벌어졌다
고대의 흙이 환하게 품고 있는 고요한 탈육의 기능미, 무덤의 주인은
직사각형 하늘연못에 눈을 담그고 있다
자작나무가 품고 있는 우주의 무한한 깊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2.
빛과 그림자가 하나이듯 밤과 낮이 하나이고
탄생과 죽음도 하나, 죽음은 삶의 가변함수이며
삶은 죽음의 점이지대다
뱃속 포대기에 쌓여있던 울음 한 조각을 자궁 밖에서 터트려
허공에 바르는 순간 맥박은 새로운 별이 되어 하늘에 박힐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여정의 길이를 토막 내기 시작한다
산 이와 죽은 이들이 셀 수 없이 찍어놓은 지문들의 서사(敍事)가
손바닥을 징처럼 울린다
세상이 주는 빛을 먹고 지상에서 잘 머물렀으니
남은 생의 편린을 향기 나게 박음질하여 누군가의 가슴에 장서로 남아야할
절반의 과제를 나는 여기서 부여받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