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잔열
김덕진요셉
2019. 12. 20. 10:58
잔열/김덕진
내가 내 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하늘과 맺은 계약기간 동안
끊임없이 나의 길을 조금씩 묻어가며 등뼈에서 새는 바람으로
캔버스 속 생의 현을 눈부시게 울려야했기 때문이다
줄거리 빠진 이야기의 속편,
색채 없이 사막을 건너온 잔열 같은 시간의 뒷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면
나와 나사이의 아득한 거리에서
끊지 못한 구속처럼 내 생의 연주곡이 묽게 변주되어 흐른다
환속하는 새벽이슬을 맞고 유령처럼 일어선 절벽이
몸속에서 빛을 찾는다
아직 부화하지 못한 고통이 새어나가기 전에
생의 밑줄위에 수없이 쌓았다가 허물어트린 계단을 손질해야한다
내가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그러나 쌓아야 할 계단이다
부풀어 오르는 밤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지독한 외로움을 앓는 신을 부른다
내 잔열의 뿌리가 식을 때까지 몸속에 뜬 별을 향해 구겨진 시간을 편다
내 그림자가 밟혔어도 직선만을 고집한 나는
나의 무기였다 나의 상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