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리 개는 철학자다
김덕진요셉
2020. 5. 14. 20:00
우리 개는 철학자다/김덕진
그의 얼굴은 이미 세상을 모두 읽은 표정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궤도를 돌며 명제의 뿌리를 캐려는 듯
고뇌의 흔적을 눈빛으로 흘린다
어둠이 잔잔하게 고이는 그의 방에도 밤에는 목마른 별들이 자리 잡는다
작은 방 한 칸이 그가 가진 전부이지만
별빛 묻은 그의 목소리는 무겁고 단단하다
고양이 발톱에 할퀴어 피 흘리는 밤의 등을 보거나
기차레일 밑에 깔린 침목처럼 침묵하던 밤이 낯선 발에 밟히면
설정된 영역의 궤도를 분주히 돌며
그의 목소리를 밤의 벽면에 수직으로 세운다
머리와 가슴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들을 수 있는 붉은 벽돌의 대화,
그의 심장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그는 둘로 갈라지는 어둠사이에서 정독했다
진화되어가는 밤을 정립하기 위해 몸속에서 잠든 그의 신(神)을 일으키고
수시로 감각의 비늘을 손질했다
시간을 앞서 바깥을 읽는 그의 귀는 어둠을 투시하는 고독한 거울,
수천 개의 입술이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