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흙빛의 무게
김덕진요셉
2020. 5. 18. 16:52
흙빛의 무게/김덕진
지구를 돌리는 신의 손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가 흙을 쥔 손가락사이에서 흘러내리는 흙냄새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을 찾은 것처럼 좋아지면서부터
그것이 신의 손바닥 냄새라는 것을 알았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그림의 윤곽이 심하게 흩어지거나
나에게서 나온 수많은 문장들이 뒤엉켜 더 이상 밑줄을 그을 수 없을 때
나는 손바닥 냄새에 더욱 밀착했다
훗날 생의 건반을 두드려온 나의 서툰 연주시간이
촛불처럼 꺼지고 나면
언제 보아도 지루하지 않을 땅의 빛깔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스스로 주문을 걸며 수없이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은 분노와 아픔의 중력은
때로는 하얀, 때로는 검은 그림자를 빚게 했다
어느 곳엔가 저장되어있을 내가 빚은 수많은 그림자의 심지들,
그것은 나의 숨이 닿는 곳인 신의 손바닥일 것이다
흙은 지상에 뿌려놓은 발자국을 모두 지우고 내가 들어가야 할 나의 궁전,
내 목소리가 길게 누울 자궁이다
흙빛의 무게, 너무나 겸손해서 눈부시게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