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차라리 마네킹이었다면
김덕진요셉
2020. 5. 21. 18:14
차라리 마네킹이었다면/김덕진
아무 색채도 없었고 흐트러진 음영의 시간만 존재했다
처음부터 없는 답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스스로 귀를 자른 화가, 두 눈을 찌른 철학자가 정지시킨 그들의 시간이
커다란 부러움으로 발화되었다
타들어가는 입안에서 건조한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었다
삼킬 수 없었던 입안의 거친 이물감,
균형이 부서진 내 뼈마디의 틈새를 모두 메웠다
어머니의 눈동자 속 태양이 지는 모습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심장타는 듯한 통증은
오랫동안 내 몸을 건너가지 못했다
사막에 누워있는 슬픈 미라처럼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영혼의 수분을 빼앗겼다
내 몸에 뜬 낮달의 창백한 혀가 최후의 포옹이 너무 두려워 언어를 잃어버렸다
회색시간의 톱니바퀴들이 어머니를 위하여 우주로 통하는 길을 다지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 말씀이 어머니를 지나갔다
무표정을 찍어낸 마네킹의 차가운 가슴을 그토록 부러워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탯줄 끊어진 아픔을 젖은 노을에 말아 꾸역꾸역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