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술과 빈병과의 함수관계
김덕진요셉
2020. 6. 8. 16:32
술과 빈병의 함수관계/김덕진
오늘과 어제의 생이 나열되는 밤의 페이지 안에서
퇴근한 사람들의 손길이 서로 교차한다
빈병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두 눈에 담긴 붉은 노을이 익어간다
잔을 들고 목을 뒤로 젖히는 횟수가 증가함에 따라
바닥에 떨어트린 남녀의 각진 목소리들이 팽창한다
그들은 술에 젖은 목소리로
언제 끝날지 모를 밤의 페이지를 연주하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모국어로 때로는 외국어로 들리는 혀 꼬인 화답,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후속편 없이 끝나버릴
어느 늦은 밤의 한 토막 연극 같은 무대 위에
저마다 흔들리는 제 숨을 발라 놓는다
마개를 새로 딴 술병이 허공을 건너며
수평의 체위를 유지하는 동안 붉게 익은 노을이 그들의 눈가에서 새는 것을
그들은 보지 못한다
구겨진 밤의 등을 적시는 술병 속에 그들 각자의 우주가 들어있다
형식 없이 늘어놓은 빈 술병으로
윤곽이 허물러진 색채를 낳고 있는 밤, 아무도 이 풍경을 거절하는 이가 없었다
정립되지 않은 술과 빈병의 함수관계에는 거꾸로 선 물음표가 따라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