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자막처리
김덕진요셉
2020. 12. 18. 15:56
자막처리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더라도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다르다면 엇박자의 색깔을 띤
생각의 무게로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태양이 달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되는 문장을 서로에게 억지로 떠먹여줬을 때
섬처럼 떨고 있는 가슴은 하얗게 체한다
어두운 말의 그림자가 쌓여갈수록 몸속의 현은 녹슬어
둔탁한 소리를 꺼낸다
하나의 생명이 자궁 밖으로 나와 처음 눈을 떴을 때
몸속의 현으로 하늘을 불렀을 것이다
언젠가 끊어질 현의 울림, 캄캄한 목구멍 속 운하에서 표류하는 동안
생의 둘레에 허한 발자국을 낙관처럼 찍으며
얼마나 자주 얼굴을 고쳐야 했을까
그때마다 신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을 방어할
유리한 자막을 흘린 것이다
반쯤 접혀있는 내 망설임을 위하여 저녁노을의 가장자리에
한 뼘의 여백을 남겨놓았다
노을을 등에 업은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