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입술운하
김덕진요셉
2020. 12. 25. 16:24
입술운하/김덕진
이토록 깊고 넓은 운하를 본적이 없다
이토록 얕고 좁은 운하를 본적도 없다
천사와 악마가 악수를 나눈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이들은 캄캄한 편도의 운하에서 늘 동거해왔다
아무르 강처럼 열려있는 입술, 사랑과 미움을 얹고 들락거리는
수레바퀴의 그림자농도가 짙다
입술에 머물렀던 수많은 이름들을
부치지 못한 수하물처럼 나열하고
끊어진 목소리를 부른다
눈을 감아도 몸을 통과하는 이름, 식도를 역류한 것처럼
가슴속이 따갑게 탄다
입술과 입술사이의 캄캄한 운하에
몇 개의 봄이 더 남았는지 모른다
천사의 날개옷과 악마의 창이 수시로 부딪치는 소리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가 없으나 두 평행선은 갈등의 통점 같다
파열음이 자라는 입속의 혀는 불안하다
입술에 얹혔던 익지 않은 문장에서 아직도 풋내난다
내 안의 저울 한 번도 정확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