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회 끝에 서서

김덕진요셉 2021. 4. 5. 15:46

연주회 끝에 서서/김덕진

 

오선지 안에서 부화한 세상이 나왔다

털실뭉치 같은 세상의 올이 오선지 안에서 풀려나왔다

내가 보았던 것은

내 마음을 딛고 서있는 세상의 숨소리,

고뇌와 번민으로 낳은 음색을 입은 숨소리의 리듬이었다

사막에서 죽어가는 강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느다란 음률,

별의 해안선을 적시다가 폭포처럼 일어서는 파도에

내 마음의 기슭이 쓸렸다

토막 난 햇살의 혈관을 찾아 잇듯 내 고유 언어를 버리고

귀의 침묵을 열었다

때로는 빙하의 등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다가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다투는 개울물소리를 듣다가

끝없이 펼쳐진 민들레 밭에서 빈 가슴을 반기는 노란 봄을 마셨다

천천히 노란 현기증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지은 죄가 많아서

내가 지워질 때까지 내 그림자에서 피가 나오도록

나를 끌어야한다

남아있는 내 몸의 올이 전부 풀릴 때까지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구겨진 내 하늘을 펴야 한다

구겨진 내 마음을 다림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