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빈 병
김덕진요셉
2011. 1. 4. 15:03
빈 병
김덕진
응달진 마음 한쪽 모서리에
딱딱하게 굳은 거친 빵 거죽처럼
잔설이 덮인 차가운 가슴이 병마개를 비튼다
병 속에서 출렁이던 이슬이
목젖을 적시며 가슴에 고이고
포개지는 시간이 충혈 된 넋을 서서히 퍼낸다
막차에서 쏟아진 사람들이
불개미 떼처럼 황급히 흩어지며 협연한
발자국의 난타 공연이 짧게 막을 내리고
신발에 짓밟혔던 침묵이 두껍게 쌓인다
어느 한때 뒤틀린 꿈의 뿌리가 사막에 떨어져
핏기 없이 말라버린 넋으로
그날그날을 주워 먹어야 하는 별빛 죽은
밤거리의 시든 꽃들
그들의 비릿한 하루가 어둠의 바다에서
비틀거리며 표류하고 있다
깨알만한 욕심도 여물 수 없는 절망의 언저리
충혈 된 넋을 퍼내느라 바닥을 비운 술병이
시든 꽃의 머리맡에서 밤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