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찬물에 밥 말아 먹을 때
김덕진요셉
2021. 7. 2. 12:48
찬물에 밥 말아 먹을 때/김덕진
찬물 속에 하얀 웃음이 가라앉았다
파편처럼 흩어진 물그릇속의 웃음들이
뱃속의 안부를 묻는다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물의 등에 납빛 얼굴이 얹혀있다
정화수에 정성을 풀어 넣을 때의 의식처럼
모든 소리는 삭제되었다
모르는 이가 읽어볼 수 있는 비문 같은 밥알의 침묵이 환하다
빛이 매몰되는 뱃속은 늘 배고프다
숟가락에 얹힌 물속의 파편을 삼키고
아침의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한다
구겨진 시간을 넘으려면 나의 등 뒤에서
아침 해를 찾아야 한다
오래전 아무도 모르게 가슴에 들여놓은 그늘을 키우기에는
너무 먼 길을 돌아서왔다
속울음까지 받아주는 물,
퇴화된 손바닥으로 혼돈의 질서를 빗질하며 우는 법을 배웠다
물에 밥 말아 먹을 때 난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