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소리를 삶는다

김덕진요셉 2021. 10. 8. 08:12

여름밤, 소리를 삶는다/김덕진

 

풀벌레들이 벌이는 밤의 제전이

여름의 화려한 끝물이라는 것을 안다

태양이 벌겋게 달궈놓은 노을은

또 다른 하루의 끝물, 무중력 그림자가 물구나무서서

빛을 흡수하는 방으로

노을을 휘젓는 새떼의 날개소리 스민다

여름의 기울기를 가늠한 풀벌레들이 어둠을 몸에 바르고

서로 다른 음색으로 쏟아놓은 울음위에

제 울음을 포갠다

하나의 계절을 건너기 위해 밤은 여러 날 뒤척이며

안개의 벼랑을 딛고 오는 새벽을 기다렸다

이웃집 텃밭에서 풀벌레들의 울음 끓는 소리가

장작불처럼 일어선다

풀벌레는 사람보다 앞서 시간을 허물고 소리의 지문을 찍는다

가을을 잇는 길목의 밤은 귀에 물꼬를 트는 밥솥이다

풀냄새 묻은 싱싱한 울음을 삶는다

상형문자로 채워가는 여름밤의 모퉁이가 무척 풍성하다

오늘밤은 주석을 달지 않아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