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에게 묻는다

김덕진요셉 2021. 11. 11. 15:12

초승달에게 묻는다/김덕진

 

칼과 도마가 만나는 부엌에서

자주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부엌을 꽉 메우고 새어나온 동그라미에서

그녀의 손바닥 냄새가 났다

칼과 도마의 간극은 내 안에서 나를 찾는 것만큼 멀지만

빗금 친 생을 써는 것처럼 가슴 떨리는

토막 난 설레임도 있다

날마다 그곳에서 신의 곡조가 연주되기 때문이다

 

칼이 밤하늘 냄새를 맡았다

최초의 입맞춤을 숨기고 부엌을 빠져나온 칼,

동남쪽 하늘언저리에서 쇄골을 드러낸 채

단단하게 굳은 별빛을 썬다

어둠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는 칼은 매일 밤 조금씩

몸집을 불려야 했다

노랗게 숙성된 빛으로 발광하는 칼날에 밤의 껍질이 벗겨진다.

구름도 칼 앞을 지나갈 때에는 겸손해진다

시간이 만든 칼 날 위에서

푸른 심줄이 박혀있는 말을 듣고 싶은 밤이다

오늘은 내가 저 칼을 몰래 베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