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가을밤, 혓바늘 돋다
김덕진요셉
2021. 11. 28. 19:28
가을밤, 혓바늘 돋다/김덕진
어둠이 혓바늘처럼 돋는 밤이다
하나 둘 몸을 달군 가로등이
마을골목을 끓이기 시작한다
가을밤을 견인해온 귀뚜라미울음소리가
숙성된 밀가루반죽처럼 부풀어 오른다
선분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전설이 하늘에 옹이처럼 박혀
수수께끼 같은 신화를 엮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붙은 옹이를 보며
밤의 껍질을 벗겼을까
수면제의 속임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불빛에 구워진 얼굴들, 저마다 한 움큼의 비명을 품고
불면증을 앓았다
허물 벗은 맨살로
나뭇잎처럼 뒤척이며 피운 육질의 꽃에서 오늘이 빠져나간다
빈혈로 쓰러지는 거미줄 너머의 세상,
다시 눈동자를 삼킨 어둠이다
가을색깔을 입은 바람이 투레질하는 소리에
나뭇잎이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