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것들의 내부는

김덕진요셉 2021. 12. 4. 18:56

망가진 것들의 내부는/김덕진

 

누군가 희미하게 깜박이는 내 등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고장 난 것들과 서서히 망가져가는 내 등을

교대로 정복하려는 시선에 각주가 달린 듯 등줄기가 가려웠다

매일 밤 고양이들이 냄새의 비문을 읽으며

눅눅한 꿈을 한 뼘씩 키우는 곳,

가슴에 달린 문짝이 덜컹이는 제 시간의 뿌리를 뽑고

여러 날 같은 곳에서 지루한 재생을 꿈꾸며

벗어 놓은 아침을 또 입는다

몸 밖으로 밀어낸 아픈 흔적들이 유언장처럼 흔들린다

생의 무게가 한 획의 쉼표로 요약되는 순간

밤의 경전이 벗겨진 자리에서는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누군가 내다버린 세찬 흔적,

손바닥의 온기가 지워진 맨몸에 어떤 이는 죽음의 값을 매길 것이다

아직 손을 타지 않은 한 덩이의 죽음 밖으로 더딘 길을 낸다

구겨진 바람이 텅 빈속을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