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물의 씨앗
김덕진요셉
2011. 1. 25. 15:36
물의 씨앗
- 눈 -
김덕진
하늘 밭에서 여물은 물의 씨앗이
명창의 입에서 익은 판소리처럼 바람을 훑고
하얗게 쌓인다
갈라진 빙하의 등을 훔친 젖은 바람에
갈맷빛 꿈을 얹어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수많은 색깔의 언어가 흰 날개를 달았다
저마다의 외진 가슴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의 꽃으로 피어난 물의 씨앗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으로 눌러 그릴 수 있도록
품이 넉넉한 하얀 스케치북을 펼쳐놓는 중이다
움푹 패인 발자국에 포근한 햇살 몇 가닥
소복이 담기는 날
씨앗은 물로 발아되면서 스케치북에 전각된
그림을 모두 지우고 낮은 곳에 고여
내 육신의 일부가 된다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은데 비하여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야하는 내 길은 왜
그리도 힘들고 더디기만 한지
씨앗의 환한 나들이는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