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파도 한 토막
김덕진요셉
2022. 3. 18. 20:21
파도 한 토막/김덕진
실내조명으로 뒷걸음친 어둠이
롤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은 창밖에서 까치발을 딛고
빛의 허밍을 껴안는다
신발 뒤축으로 지구를 꾹꾹 누르며
하루를 모두 허물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못갖춘마디 같은 파도소리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물집 잡히는 소리가 부풀었다
그녀가 밤의 휘장을 태우는 즉흥환상곡에서 바다에 지문을 풀고 온
파도냄새가 났다
어느 한순간 포획되었을 파도의 폴테시모, 마지막 숨을 바다에 눕혀놓았지만
유리알처럼 부서지는 포말을 사랑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울음을 가르치기 위해 파도는 몸을 둥글게 말고
스스로 아픔을 길들였다
안단테의 선율로 저녁을 조율하는 그녀의 손끝에
질그릇 닮은 색채가 묻어있다
날마다 그녀의 눈망울 속에 뜬 보름달로 내 등뼈는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바다의 기호를 굽는 시간의 기다림은 나의 것,
그녀가 구운 파도 한 토막 내 저녁식탁에 올라왔다.
화인이 찍힌 파도의 뼈를 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