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골목은 잠을 잔 적이 없다
김덕진요셉
2022. 6. 8. 22:14
골목은 잠을 잔 적이 없다 /김덕진
아직 오늘을 다 담지 못했다
골목은 내 마음의 이젤에 얹힌 화폭이어서
내가 포옹한 밤의 색채를
팔레트 안에 풀어 넣었다
노을이 접힌 골목을 찾아오는 바람이 떼인 돈 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골목을 훑는 거친 혀로 귀에 염증을 일으켰다
내가 아는 바람은
세상에 대고 소리를 문지르는 혀보다 먼저 도착하곤 했다
매일 밤 삶의 껍질이 모이는 곳,
하룻밤 지나고 나면 덜 익은 골목은 조금 더 익어간다
바닥에 떨어진 가로등 불빛을 밟고 휠체어를 밀고 가던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
어둠과 하나 되었다
밤바람이 파고드는 그들의 훼손된 꿈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낯선 냄새를 맡고 골목을 꿰뚫는 개들은
어둠이 잘린 단면을 물고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리는 골목을 예언할 수 있었다
바람의 내부에 쌓인 추문이 날짜변경선을 찍고 돌아오면
소문의 각도는 더 넓게 벌어졌다
혀에서 새어나온 퍼즐을 맞추려는 귀는 골목에서 제일 크게 자랐다
누군가 허공에 목소리의 뼈대를 세우며 간다
골목은 한 번도 누워본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