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계단 밑 창고에는
김덕진요셉
2022. 8. 12. 18:57
계단 밑 창고에는/김덕진
팽창된 어둠을 가라앉힐 전등에
불을 붙이기 위해 손바닥으로 어둠을 읽는 동안
나는 조금 더 겸손해진다
생을 요약한 지문들이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계단 밑 창고의 풍경을 내 안에 들여놓으려면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낮아져야 한다
그러나 액자 속의 풍경으로 내 안에 걸어놓기에는 난 더 아파야 하고
아직 커다란 돌의 속울음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하루 종일 서있어도 그림자의 기울기가 없는 곳,
어둠의 크레바스에서 건져 올린
묵은 시간의 태엽을 풀어 보았다
각질이 떨어져나간 용품들의 희미한 이력이 풀린 실밥처럼 너덜거렸다
먼 미래 쪽에서 불어올 바람 속에 던져놓고
오랫동안 펼쳐보지 않은 서문처럼
한자세로만 누워있는 시멘트 한포의 욕창을 보았다
매일 수많은 다리들이 계단의 침묵을 벗기지만
어둠이 포개진 창고 안에서 감각을 잃어버린 통증이 굳어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경직된 시멘트의 등뼈를 풀어주자 혈색이 돌아왔다
시간은 죽음을 향해 웃고 있지만
지난 날짜를 지우는 여기서는 죽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