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느 봄날의 서사
김덕진요셉
2022. 9. 9. 21:51
어느 봄날의 서사/김덕진
일부러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아서 기억한다
겨우내 글썽이던 바람의 눈시울이 마를 때쯤이면
몸속에 묶여있던 소리가
또 다른 목소리를 찾는 봄의 서술로
온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한다
달력을 앞서나간 사람들의 손바닥에서
낡은 해가 뜨고
풋내 나는 초록함성을 받아 적은 검은 비닐이 햇살의 뿌리를 자른다
징처럼 울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만의 특권,
이제 지구변방의 가려운 등을 긁어줄 시간이다
달의 숨소리를 아무도 모르게 넘기며 허기 속에 머물러 보았던 사람은 안다
하나의 봄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바람의 속지를 속아내었는지를
흙 한 줌에서 시작된 생의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이들이 벗어놓은 그림자의 색깔은 제각기 달랐으나 모두 구름냄새가 났다
심해에 가라앉은 꿈을 끌어올리는 그물처럼 그림자의 주름이 팽팽하다
구부러진 등뼈에서 떠나온
고추지지대 머리 맞는 소리가 모여 내 귀에 도랑을 낸다
망치가 빗는 쇳소리에 흙의 서사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