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요셉 2022. 9. 23. 20:32

/김덕진

 

누군가 내다버린 금이 간 거울을 들여 다 보았다

거울 속 한쪽 모서리에 시간을 붉게 삭힌 흔적을 입은

낫 한 자루가 누워 있었다

한때 불속에서 고통을 세웠던 뼈였을 이 빠진 낫이

꽃비 날리는 바람을 베고 있었다

굳은 살 박힌 바람의 짓무른 입술에서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새어나왔다

밤과 낮이 어색하게 교대하는 시간의 틈새에서

밥 한 끼를 찾기 위한 처방전을 구했을 사람들이었다

둥그렇게 등을 말고 앉아

숫돌로 시퍼런 날을 세우는 동안 어쩌면 그들은

뜨거운 고통의 중심을 통과했을지 모른다

정작 그들이 두려웠던 것은 아직 불어오지 않은 미래 쪽 바람의 지문이었지만

그들은 매일 최면이라는 속임수로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낫의 궤적을 따라 쓰러져 흘리던 공명,

혼자서는 아무 울음도 보탤 수 없었다

낫은 그들에게 하루를 추스르기 위해 끊임없이 연주해야할 악기이며 도구였다

 

그들은 그늘냄새를 맡으며 삶의 모서리를 통과하는 중이지만

직립은 누웠을 때가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