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그림자가 있다

김덕진요셉 2022. 11. 19. 20:46

()에도 그림자가 있다/김덕진

 

먹구름이 몸속에서 배양되는 날은

언제나 따라다니는 그림자마저 거추장스러웠다

그림자로 피어난 아픔이 지나간 자리마다

검은 멍 자국을 문신처럼 남겼다

가시처럼 자라는 말, 장미의 가시에 찔려 피 흘리는 말을 들으며

바위가 품은 속울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이다

 

꿈이 부서진 길목으로 매일 똑같은 아침이 오고

세상은 태양의 눈부신 침묵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너무나 잘 알아듣는다

순서 없이 지는 낙엽처럼 목마른 방을 들락거리는 바람이

읽다만 책 페이지를 넘긴다

우수수 흩어지는 그림자, 글에도 갈증 난 그림자가 있다

 

꿈이 식어 혈색이 돌지 않아도

창백한 그림자와 함께 있다는 것은 비록 비가 묻은 바람의 집을 짓더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

얼마나 큰 위안인가

빛을 물고 온 새들의 부리가 눈부시게 환하다

아무도 모르게 들춰보고 싶은 그림자 한 토막,

그 뒷면에 숨은 얼굴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