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풀벌레 울음, 밤을 적시다
김덕진요셉
2023. 2. 6. 20:51
풀벌레 울음, 밤을 적시다/김덕진
여름과 가을의 교집합 속 밤은
거대한 압력밥솥이다
술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그 백색소음을 날이 새도록 끓인다
어떤 이에게는 목소리를 가지런히 눕힐 수 있는 수면유도제가 되었다
교향의 밤 끓는 소리가 귀에 도랑을 내는 동안
서까래처럼 누워 잠 못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몸에 집을 짓는다
덜 영근 꿈에서 뽑아낸 실로 제각기 자신의 고치를 만들고
아침이 오면 나방이 되어 태양의 속살을 판다
물렁한 뼈들이 서있는 어둠의 벼랑으로
조금은 고립된 평화가 몰려온다
소수점 이하의 불안은 절사하고
너무도 게을렀던 내 사랑의 무게를 잰다
풀벌레들이 밤을 건져 올리는 소리에
상처를 밀어냈던 날들이 들어있다
누군가 발자국을 남기고 나를 다녀갔어도 내 사랑에는 썰물이 없었다
한쪽 모서리가 접힌 늦여름 밤의 젖은 속지를 펼친다
입술을 넘지 못한 말들이 나를 지우고 바퀴자국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