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물의 끈
김덕진요셉
2023. 6. 3. 18:56
물의 끈/김덕진
이슬 한 방울을 뽑으려면
우주는 밤새도록 두려움에 떨며 뒤척여야 한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숨을 참고 물 묻은 시간을 견인해 가는 바다의 한 부분이다
나뭇잎 끝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태양을 한입 깨문 자리에서
피 같은 스펙트럼이 솟구친다
태양은 왜 아침마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떠오르고
달은 왜 구겨진 구름을 밤새워 다림질 하는지
그건 하늘의 일이라 미련을 갖지 않기로 했다
다만 언젠가 내 몸속에서 바다가 엎질러진다면
하늘언저리 한쪽 구석이라도 닿을 수 있도록
나는 허공에 길을 내야 한다
이제 더는 각색한 바람의 무게를 재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수시로 자해하는 바람에 맞서
서로 어깨를 기댄 물방울들이
바다가 목마른 핏줄을 더듬으며 가장 낮고 허전한 바닥을 끌어안는다
어느 시점에 이른 물은
스스로 가한 편태(鞭笞)의 고통을 거쳐 바다에 이르러 이름을 지우고
그토록 오래 참았던 숨을 풀어 놓는다
마침내 성찰의 문, 해탈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어디선가 또 다른 바다의 목소리가 환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