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에 눈알을 헹굴 때

김덕진요셉 2023. 6. 8. 21:22

빗물에 눈알을 헹굴 때/김덕진

 

천둥소리가 정수리에 얹히고

눈알이 빗물에 헹궈지는 날은 눈물을 흘리기 좋은 기회다

천둥소리에 울먹이는 소리가 묻히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빗물과 겹쳐지기 때문에

울음이 몸 밖으로 새는 줄 아무도 모른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지상에 마지막 낙관을 동그랗게 찍는 소리,

빗방울들의 눈부신 투신은 가슴에 멍이 들도록 두들기는 난타공연이다

물의 신전에서 날아오른 나비 떼가

흩어진 활자를 그러모아
뒷걸음치는 그림자들 사이에 물의 탑을 쌓는다

젖은 구름의 뼈들은 세상의 웃음을 추월하여

빗소리 묻은 울음을 키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가난한 생이 꺼내는 음색과

부유한 생의 부스러기에서 묻어나오는 음률이 서로 같을 수 없다는 것,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야윈 발목이 내 앞에 버리고 간 발자국에서

귀퉁이가 해진 경문을 보았다

신전의 기둥처럼 세상을 머리에 이고 세상을 굴리는 성스러운 바람을

여전히 뿜고 있었다

빗살무늬에 갇히는 날이 이래서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