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암막커튼을 치고
김덕진요셉
2023. 11. 1. 19:19
암막커튼을 치고/김덕진
흩어진 꿈의 뿌리를 다듬는다
잃어버린 바다의 지문을 찾기 위해 해진 돛을 손질한다
읽다가 덮어놓은 책속의 글자처럼
어둠을 베고 온종일 눕고 싶은 날
두꺼운 천으로 창의 입을 틀어막아 벽의 자유를 빼앗는다
낙엽 한 닢 뒤집는 것도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도 귀찮은 날은 아무리 작은 한줄기의 빛이라도
제멋대로 창문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가위로 싹둑 잘라 토막 내고 싶을 때가 있다
암막커튼이 품은 검은 고치 속으로 들어갈 때에는
몸에서 빠져나간 바다의 흔적에 내 색깔을 입힌다
내 몸속을 유영하는 물고기 떼를 잡아먹고
몸에서 돋은 비늘이 떨어지던 날
발가벗은 파도 한 토막의 울음을 목마름으로 마셨다
한낮의 고치 속 어둠이 태양의 등에 박힌 달력의 숫자를 빠져나가는 중이다
빛을 걸러낸 어둠과 하나 되는 설레임, 소행성에서 배달 온 소포 같은 평화가
방사능처럼 번진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바다는 이제 그만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