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요셉 2011. 4. 5. 11:30

                         써레질

                                          김덕진


아버지의 거친 손바닥 같은 논배미에

하늘이 내려앉았다

매일 밤 달이 도마질할 때 떨어뜨린

푸른 비늘을 날리며 들판에서 춤추던 바람위로

커튼이 접힌다

어둠의 잔뿌리가 달에 걸린 저녁

물이 잠든 논에서 자라난 별들이

하나 둘 피어나고 봄의 절차는 겨우내 접혀있던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풀어놓는다

땅과 하늘의 틈새에서

진흙의 순수한 눈과 마주친 순간 검불처럼

널브러졌던 빛바랜 기억이 소나기를 만났다

아버지는 소와 함께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논을 삶는 봄의 오케스트라를 협연하고

하늘을 밀고 가는 풍경화의 면적이 되었다


하얀 뼈가 벌겋게 드러나도록

마음을 깊이 갈아 써레질하고 육질의 모를 심고

싶은 들녘에서 나는,

논을 삶으며 하늘을 옮기는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