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진요셉 2011. 4. 7. 18:40

                   벽

                                       김덕진

 

침묵을 흘리고 서있는 벽 앞에

또 다른 벽이 서있다

가시 돋은 외침이 심지가 타버린 촛불처럼

흔들리며 벽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삼태기에 담긴 콩깍지 같은

내 현실의 해안선이 젖은 연기를 피우며

검은 바다의 혀를 소각하고

딱딱하게 경화된 재의 그림자를 털어낸다

벽의 바다에 차오르는 수위

재생될 수 없는 지난 생애의 변증이

투명한 얼음 속에 박힌 관상용 물고기가 되어

유빙처럼 표류한다

작은 이파리 하나가 뒤집힐 때도 우주가

움직여야 하는데

난 찢기지 않는 보호막을 두르고 틈을 메워

스스로 섬이 되어갔다

 

벽이 되어 서있는 자신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박제된 그림자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