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베끼다

김덕진요셉 2024. 12. 30. 21:52

사랑을 베끼다/김덕진

 

윤곽이 허물어진 빗방울 하나,

해진 바람 한 점이

시들어가는 내 육질의 꽃에 닿기까지 밤은 홀로 떨며

얼마나 오랫동안 뒤척였을까

빗살무늬에 갇힌 지구의 작은 변방에서

영원에 이르지 못한 뼈가 도굴된

무덤 냄새가 났다

때때로 황달 걸린 달의 혈을 보고 천장의 반성문을 썼던 충혈된 시간이

명치 끝에 매달린 통점으로 자랐다

나는 아픔을 배양하려고 태어난 몸, 어딘가 조금은 아파야 멀쩡해진다

내가 빗살무늬의 배경이 되기 위해서는

내면 깊숙이 매설된 통점이 눈을 떠야 했다

끊어진 기억의 현을 이어서라도

마지막 남은 빛 한 토막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혹독한 사랑을 연주해야 한다

나에게 내 뼈를 깎을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은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다

최초의 울음은 사랑의 기원, 최초의 문체가 된 사랑을 연주해야 할 이유다

 

그렇지만 내 안의 내가 아직은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