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김덕진요셉 2025. 2. 14. 21:02

몸살/김덕진

 

그토록 오랜 세월 흙냄새를 맡으며

속울음을 흐리던 바위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알바트로스는 가장 멀리 비상하기 위해

홀로 바람과 맞서야 할 폭풍우를 주문처럼 불렀다

알바트로스의 주문은 유효했다

 

적도 위 서태평양수역에서 태어난 여인이

응집된 수증기의 아우성을 품어 만삭이 된 몸을 이끌고 해산할 곳을 찾아

팽이처럼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양수가 터졌다

 

신의 곡조로 팽팽하게 직조된 해산의 진통은 너무 매웠다

바람의 비명이 시린 잇몸을 파고들었다

 

소용돌이치는 공포를 삼킨 눈,

신과 악마가 함께 들어있는 공포를 되새김질한 입속에

물비린내가 흥건하게 고였다

젖은 바위의 풍경이 되어 구겨진 하늘을 읽었다

싱싱한 죽음의 지느러미 속 태풍의 눈에서 알바트로스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산고를 겪은 여인 지금 동해에서 산후조리 중이다

어둠에 익숙한 눈 보다

비록 사랑이 없더라도 하혈하는 붉은 달의 눈물을 더듬이로 읽는 것이

내가 조금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