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번개가 서는 날
김덕진요셉
2025. 4. 5. 19:01
번개가 서는 날/김덕진
새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떼를 지어 구겨진 하늘을 날던 새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길 거부하고
하늘의 점자가 되어 번개의 무늬를 찾는다
젖은 구름이 새 떼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버림받은 천사가 흘린 독백이
번개의 무늬를 불렀다
내가 번개라고 불렀던 것은 몸속에서 깊이 잠들었던 압축된 바다가
눈을 뜨는 소리였다
파도가 끊어지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번개가 뿌리까지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수직으로 섰을 때 누군가는 몸속을 도는 피도 아파야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에 갈겨쓴 수많은 오답을 지우며
등에 부착된 물표에 공란으로 되어있는,
신만이 알고 있는 배송일자를 생각했다
때로는 물속에서 익사하는 물고기를 보며 세상을 읽어야 하는 아이러니,
물고기는 왜 눈을 깜박이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래도 세상의 말문은 열리고 신은 여전히 혼자서 주사위 놀이를 즐긴다
나도 가끔 타락한 천사가 흘린 말을 끌어다 쓸 때가 있다
남의 부러진 날개를 딛고 튀어 오른
불온한 뼈가 들어있는 굽이 높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