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처럼 너그러울 수 있다면

김덕진요셉 2025. 7. 1. 15:43

달처럼 너그러울 수 있다면/김덕진

 

뽀얗게 분을 찍어 바른 낮달,

모딜리아니의 눈을 가진 달의 얼굴에서

헐겁게 흘러내린 웃음이 창백하다

눈동자가 없어서 더욱 완벽한 얼굴에

수천, 수만 년을 흘러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소망과 눈물과 한숨을 섞어 얹어 놓았으면

저토록 울음에 체한 색깔로 숙성되었을까

토르소의 하얀 침묵은 낮달의 감춰진 또 다른 이름,

구결진 하늘 언저리를

응고된 침묵으로 수없이 다림질했다

태초부터 달은

어떠한 풍경도 거절하지 않은 거울이었다

달의 난간 외에 딱히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하여 달은 빛의 근육을 숙성시켰다

생의 표지가 해진 이들이 각혈해 놓은 흔적을 차마 지울 수 없어

누구나 눈을 맞출 수 있도록 화인처럼 간직해왔다

태초의 달빛을 집어삼킨 이들의 목에 차오른 이물감, 눈물이 번진 얼굴로

토해내야만 붉은 신열이 가라앉았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시간의 물집 속에 들어있는 달의 목소리를 자막없이 읽는다

 

스스로 소멸을 사랑한 노을,

천체 위에 쓰러진 혈흔 같은 노을을 환약처럼 개어

입속에 털어 넣었다

내 이름이 파계된 유품으로 추가되는 날까지 나는 매일 밤 달의 뒤편에서

신과 숨바꼭질해야 한다

오늘은 신에게 들키지 않고 달빛 한 움큼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