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의 그늘

김덕진요셉 2011. 4. 26. 14:51

    죽은 나무의 그늘/김덕진


잎이 없는 나무에서 바람은

할 일을 잃는다

검은 뼈만 남은 나무의 텅 빈 그늘 속으로

풍화된 기억의 색채가 스며들어

오래전에 돌아누운 생각을 쓰다듬는다

한때 나뭇잎을 적시며 머물다 떠나간

빗방울의 쓸쓸한 윤곽이

검은 뼈에 판화처럼 각인되었다

수액이 마른 나무는 아직도 해야 할일이 있어

부러진 팔을 벌려 하늘을 떠받치며

긴 목마름의 화석 같은 그림자의 언어를

햇살에 풀어 놓는다

해마다 깊이를 만들어가는 나무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섬 같은 색채를 낳는다


그림자의 언어가 타들어간다

뼈만 남긴 언어에서 검은 향이 피어난다

죽은 나무의 그림자가 바라본 곳은 푸른 입을

벌린 하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