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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을 개다가 문득

수건을 개다가 문득/김덕진 무료함이 바삭하게 튀겨지는 휴일 오후연신 터지는 하품이 눈물샘을 자극했다아내는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 테라스에 옮겨 놓고 외출중이고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오후가 되어도 은하수를 건너는 중이다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쥐고TV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것도 싫증 나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귀찮아졌다눈을 뜨면 낯익은 구름이 창을 통해 텅 빈 몸을 들여다보고새들이 구름에 찍는 발자국 소리를 가슴으로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도남의 옷을 입는 것처럼 거북했다 별의 해안을 적시는 파도 소리를 듣다가 눈을 떴을 때태양의 목젖이 한창 부풀어 오르고붐비는 햇살에 수분 털린 빨래들이 바람을 때리고 있었다가끔 빨래를 개다 보면 양말 한 짝이 부족했던 적이 종종 있음을 ..

2026.09.03

내 안의 몬드리안

내 안의 몬드리안/김덕진 그때 나는 바람의 색깔을 고르고 있었다 고층빌딩 유리창에서 흘러내린 빛의 그림자가 아늑했다유리창을 복사한 직선의 도형,옅은 그림자를 담은 수많은 사각의 틀들이각을 맞대어 꿰맨 퀼트처럼 바닥에 널렸다그림자의 면적을 줄이고 늘이는 태양의 숨, 피아노 속 건반 같은 낯선 기호들을화목에 엎질렀다태양을 품에 안은 유리 벽은 기억한다태양은 화상 입어 부르튼 입술의 침묵으로만 말한다는 것을세상에 엉켜있는 목소리 안에도태양의 닫힌 입술을 읽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모눈종이의 눈금 같은 빛의 그림자,빈혈의 장막이 걷힐 때까지서늘한 그림자 안에서 샤를 보들레르가 시로 그린 도시의 혼란과 미를 상상했다그는 징처럼 울리는 손바닥으로 싱징의 꿈을 발아시켰다 내가 본 것은 태양이 유리창에 입맞춤한 ..

2026.08.31

노숙자

빗방울이 창문에 수채화를 그린 날목발을 짚은 신의 외 발자국을 보고신이 다녀간 흔적을 읽었다담금질한 고통에서 새어 나온 묵직한 그리움 한 뭉치,그리움이 흘러나오는 곳은신이 찍어놓은 외 발자국에서 지워질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보는 것처럼언제나 같은 방향이었다신의 발자국을 찾을 수 없는 날눈물에 익숙한 신의 눈에서 소리 없이 솎아낸젖은 별을 주웠다그것은 나의 디딤돌이 된 내면의 저울,짓무른 바람을 매일 한 겹 도 한 겹 걷어내고 늘 낮은 곳으로 기울어야 할나침반이 되었다화살촉이 달린 말을 꺼내는 것 보다실어증을 앓는 별을 닮는 것이이름을 지우고 나침반의 바늘로 깊어지는 것임을 알았다 신 앞에서는 누구나 노숙자,나의 신이 목발을 짚고 다녀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에 젖은 옥외 간판에서이탤릭체 알파벳..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