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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자국

바퀴 자국/김덕진 알루미늄 빈 캔, 빈 술병을 보면내 마음에 유모차의 바퀴 자국을 깊게 새겨 놓으신어머니 같은 그분의 봉인된 음성이 귀에 도랑을 내고내 안부를 묻는다 작은 체구에 고령인 그분은허름한 빌라 반지하 단칸방을 얻어 홀로 기거하면서매일 폐품을 줍기 위해동네 골목에 해진 발자국을 낙관처럼 찍으며 유모차를 밀고 또 밀었다밤마다 차가운 별로 뜨는 지난 세월의 아물지 않은 상처, 덧난 환부에 고약을 붙이듯거친 숨을 고르며 낡은 돛을 올리고 골목을 항해했다 십여 년 전에 우리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분,책, 신문, 박스, 병, 캔 등 버릴 폐품이 있냐고 물으신 그분과의 인연이그때부터 올봄가지 지속되었다 나는 그 후로 원룸 세입자들이 마시고 내놓은빈 맥주캔과 빈 소주병이 어느 정도 모이면 차에 싣고 그분..

시 2026.09.25

회오리를 삼킨 눈동자

회오리를 삼킨 눈동자/김덕진 한 줄기 빛이 간절한 이들의 시선이 새벽이슬처럼 축축하다 피 흘리는 침묵이 걸려 있는 모니터 속의 명단,수술대 위에 있는 이들은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싸움을 홀로 벌이며생의 악보를 편집하고 있는 중이다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보호자들의 가슴에서심장 타는 냄새가 난다가슴을 까맣게 태운 이들은그들의 속마음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에여기서는 서로 시선을 부딪치지 않는다각자에게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은 다르지만 색깔을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붉은 노을빛이다직선의 시간을 수없이 엎지른 아쉬움,한동안 지웠던 신을 아무도 모르게 부르튼 입술로 다시 만든다이 세상 끝에 닿는 언어로내일을 예약할 수 없을지도 모를 두려움을 담은단풍 든 눈빛이 저리다고독한 무인도처럼 떨며침묵..

시 2026.09.19

수건을 개다가 문득

수건을 개다가 문득/김덕진 무료함이 바삭하게 튀겨지는 휴일 오후연신 터지는 하품이 눈물샘을 자극했다아내는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 테라스에 옮겨 놓고 외출중이고새벽에 들어온 아들은 오후가 되어도 은하수를 건너는 중이다소파에 누워 리모컨을 쥐고TV 채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것도 싫증 나고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귀찮아졌다눈을 뜨면 낯익은 구름이 창을 통해 텅 빈 몸을 들여다보고새들이 구름에 찍는 발자국 소리를 가슴으로 읽는 방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도남의 옷을 입는 것처럼 거북했다 별의 해안을 적시는 파도 소리를 듣다가 눈을 떴을 때태양의 목젖이 한창 부풀어 오르고붐비는 햇살에 수분 털린 빨래들이 바람을 때리고 있었다가끔 빨래를 개다 보면 양말 한 짝이 부족했던 적이 종종 있음을 ..

시 20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