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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억

종(種)의 기억/김덕진 내가 신 앞에서지상의 노숙자로 살아가는 동안 내 몸은 기억한다세상에 터트린 내 최초의 울음이문자로 빚어지기까지새벽을 일으킨 어머니의 목소리에 내 몸이 감기고어머니의 입김이 내 푸른 심줄을 키웠음을 내 몸의 서문은일찍이 어려서부터 들어온 어머니의 말씀을 인용한 글로 채워놓았다영혼의 찌꺼기를 걸러낼 잠언 같은 문장,이따금 적의를 품은조준된 화살의 과녁이 되기도 하였으나 문장에 오류는 없었다하늘을 쓸고 있는 억새꽃처럼 지상 순례의 여정을 환하게 마친 어머니를 통해새벽안개의 아픔을 알았다거룩한 영혼은 가슴을 부식시킬 수 있는 자본주의 이빨을 경계하고 때로는 허기에 머물 줄도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내 발자국 위에 얹힌 누군가의 발자국, 울음의 낱장들이 쌓인 가슴으로남몰래 수없이 달을 환약..

시 2026.10.09

바퀴 자국

바퀴 자국/김덕진 알루미늄 빈 캔, 빈 술병을 보면내 마음에 유모차의 바퀴 자국을 깊게 새겨 놓으신어머니 같은 그분의 봉인된 음성이 귀에 도랑을 내고내 안부를 묻는다 작은 체구에 고령인 그분은허름한 빌라 반지하 단칸방을 얻어 홀로 기거하면서매일 폐품을 줍기 위해동네 골목에 해진 발자국을 낙관처럼 찍으며 유모차를 밀고 또 밀었다밤마다 차가운 별로 뜨는 지난 세월의 아물지 않은 상처, 덧난 환부에 고약을 붙이듯거친 숨을 고르며 낡은 돛을 올리고 골목을 항해했다 십여 년 전에 우리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분,책, 신문, 박스, 병, 캔 등 버릴 폐품이 있냐고 물으신 그분과의 인연이그때부터 올봄가지 지속되었다 나는 그 후로 원룸 세입자들이 마시고 내놓은빈 맥주캔과 빈 소주병이 어느 정도 모이면 차에 싣고 그분..

시 2026.09.25

회오리를 삼킨 눈동자

회오리를 삼킨 눈동자/김덕진 한 줄기 빛이 간절한 이들의 시선이 새벽이슬처럼 축축하다 피 흘리는 침묵이 걸려 있는 모니터 속의 명단,수술대 위에 있는 이들은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싸움을 홀로 벌이며생의 악보를 편집하고 있는 중이다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의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보호자들의 가슴에서심장 타는 냄새가 난다가슴을 까맣게 태운 이들은그들의 속마음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에여기서는 서로 시선을 부딪치지 않는다각자에게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은 다르지만 색깔을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붉은 노을빛이다직선의 시간을 수없이 엎지른 아쉬움,한동안 지웠던 신을 아무도 모르게 부르튼 입술로 다시 만든다이 세상 끝에 닿는 언어로내일을 예약할 수 없을지도 모를 두려움을 담은단풍 든 눈빛이 저리다고독한 무인도처럼 떨며침묵..

시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