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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몬드리안

내 안의 몬드리안/김덕진 그때 나는 바람의 색깔을 고르고 있었다 고층빌딩 유리창에서 흘러내린 빛의 그림자가 아늑했다유리창을 복사한 직선의 도형,옅은 그림자를 담은 수많은 사각의 틀들이각을 맞대어 꿰맨 퀼트처럼 바닥에 널렸다그림자의 면적을 줄이고 늘이는 태양의 숨, 피아노 속 건반 같은 낯선 기호들을화목에 엎질렀다태양을 품에 안은 유리 벽은 기억한다태양은 화상 입어 부르튼 입술의 침묵으로만 말한다는 것을세상에 엉켜있는 목소리 안에도태양의 닫힌 입술을 읽을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모눈종이의 눈금 같은 빛의 그림자,빈혈의 장막이 걷힐 때까지서늘한 그림자 안에서 샤를 보들레르가 시로 그린 도시의 혼란과 미를 상상했다그는 징처럼 울리는 손바닥으로 싱징의 꿈을 발아시켰다 내가 본 것은 태양이 유리창에 입맞춤한 ..

2026.08.31

노숙자

빗방울이 창문에 수채화를 그린 날목발을 짚은 신의 외 발자국을 보고신이 다녀간 흔적을 읽었다담금질한 고통에서 새어 나온 묵직한 그리움 한 뭉치,그리움이 흘러나오는 곳은신이 찍어놓은 외 발자국에서 지워질 수 없는 상처의 흔적을 보는 것처럼언제나 같은 방향이었다신의 발자국을 찾을 수 없는 날눈물에 익숙한 신의 눈에서 소리 없이 솎아낸젖은 별을 주웠다그것은 나의 디딤돌이 된 내면의 저울,짓무른 바람을 매일 한 겹 도 한 겹 걷어내고 늘 낮은 곳으로 기울어야 할나침반이 되었다화살촉이 달린 말을 꺼내는 것 보다실어증을 앓는 별을 닮는 것이이름을 지우고 나침반의 바늘로 깊어지는 것임을 알았다 신 앞에서는 누구나 노숙자,나의 신이 목발을 짚고 다녀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에 젖은 옥외 간판에서이탤릭체 알파벳..

2026.08.22

그는 도마뱀이었다

그는 도마뱀이었다/김덕진 그는 이름에 뱀장어 기름을 바르고 나를 피해 다녔다 수퍼문이 뜬 날달의 해안을 흠뻑 적신 파도 소리가 부풀어 오르고몸에 돋은 발진으로 온몸이 가려웠다내 앞에 내려놓은 그의 말에 대해 자꾸 몸 밖으로 나오려는 의심은 어둠 속에서더 잘 자랐다바람이 온몸으로 일기를 쓰는 밤, 나는 입에 독을 물고 그의 현관문 벨을 눌렀으나아무도 벨소리에 간을 맞추지 않았다빙하의 등을 타고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는 공허한 율려의 벨소리,가슴은 얇아지고 입에서는 화롯불에 달궈진 회오리바람이 불었다그의 지속적인 전화 통화 거부와 거주지 부재는내 머리와 가슴과의 사이를 점점 멀게 만들었다이것이 내게 주어진 시시포스의 그림자에 밟힌 형벌일까아니면 프로메테우스의 선지적 예견일까차일피일 미룬 월세 미납으로 보증금..

2026.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