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의 연못/김덕진
하늘의 젖은 외침이 멎었다
투명한 창살이 걷히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침묵을 걷어내고 나온다
밤바다에 던져놓은 꽃다발 같은
희미한 윤곽의 발자국들이
덩그런 무심관심의 돛을 달고 젖은 길 위에서 표류한다
아스팔트위에서 굴러다니던 잘잘한 구슬은
먼 바다를 건너온 어느 폭군의 자결의 눈물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지난날의 무거운 갑옷 같은 물기가 구름사이를 뚫고
떨어진 햇살 한줄기 끌어당겨 덮는다
폭군이 쏟아 낸 눈물은 장독대의 연못이 되었다
몽글몽글 떨어지는 별빛과 새벽이슬을 담았던,
움푹 들어간 장독뚜껑마다
둥글게 누운 연못에 파란 천 조각을 듬성듬성 기워놓은
듯한 말간 하늘이 들어가 숨바꼭질 한다
장독뚜껑에 빠진 또 다른 눈에
아직도 물컹거리는 빗방울의 화석이 둥둥 떠다니며
비의 문자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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