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껍질/김덕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껍질을
빗방울에 대고 박음질하기 시작했다
비둔해진 욕망 조각을 덧대어 꿰맨 자국이
물먹은 실밥처럼 늘어져 돌아누운 돌 위로 윤곽이 흩어진
그림자를 흘렸다
한때 내 몸의 일부가 되어 혈관을 타고
전신을 돌았던 그 빗방울이
투명한 껍질에 둘러싸여 수직의 파열음을 바닥에 꽂았다
빗물위에 기름처럼 번진 문장부호들
그 사이에 표류하던 부식된 문장이 묵은 갈증으로 푸석해진
기억을 되감아 재생시키려고 하였다
처음부터 물에 껍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배가 불룩 튀어나온 욕망으로 물에 껍질을 입혀놓고
정수기로 벗겨야 하는 아이러니
오늘도 물의 껍질에 굳은살이 오른다
머지않아 단단해질 껍질에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비극의 날이 다가 올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물고기처럼 생각하며 머무르고 싶었던 하루, 몸에서
떨어진 비늘이 쌓여 섬 하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