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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김덕진요셉 2012. 3. 17. 08:24

 

                           맷돌/김덕진

 

 

먼지 쌓인 시간을 타넘고

흘러내린 묵은 장면들이

주인 잃은 맷돌위에 얹혀 투명한 고치가 되었다

세월의 무게에 눌려

맷돌 손잡이가 빠져나간 빈자리는

내 우주의 한쪽 구석이 함몰된 흔적보다 훨씬 크게 보였다

사랑을 맷돌에 감고 지문이 닳도록

돌리고 또 돌렸을 어머니

두껍게 감긴 사랑의 태엽을 풀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흰 광목치마에 매달렸던

흑백시간 속으로 들어가 정지된 시간을 일으켜 세우련만...

소유한 기억만큼 쌓였던

풍화된 형상들이 눈시울에서 떨어져

허기진 맷돌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맞물린 맷돌에 깔려있던 목마른 침묵에 금이 갔다

곱게 갈린 어머니의 사랑이 줄줄이 흘러내렸던 흔적에 담겨

구멍 난 가슴을 메우려고 빈 맷돌을 돌렸다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허기 밴 소리의 그림자가

독처럼 온몸으로 퍼졌다

갈기를 단 그리움 한포기

환한 통증이 되어 내 우주의 뼛속으로 이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