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나무 베던 날/김덕진
그날 가시에 찔린 허공이 피 흘리고 있었다
텃밭 가장자리에 서있던 엄나무,
침묵의 가시를 두른 사막의 은수자처럼 구도의 길을 다지는 중이었다
비둔한 육질을 덜기 위해 스스로 편태 고행자 되어 검은 바람의 기둥 속을
묵묵히 걸어왔다
수없이 삼킨 회오리바람은
마땅히 몸의 한 부분이 죽어 땅에 닿아야 할 해방을 꿈꿨다
엄나무의 혼이 땅으로 내려오던 날
엄나무의 그림자 썰리는 소리에 깊숙이 찔린 이웃집 할머니들이
나에게 몰려왔다
세월의 무게에 눌린 그들의 무릎관절은
엄나무 혼의 이식이 필요했다
끊어진 혼을 천천히 끌고 가는 할머니들의 등에서
엄나무순이 파랗게 돋았다
엄나무의 구도의 여정은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다
그림자 잘려 직립의 여정이 풀린 엄나무가시위에 공란의 괄호가 얹혀있었다
죽기 전까지 답을 찾아 채워 넣어야 할
내 가난한 숙제
구도의 길에는 여전히 붉은 안개가 걷히지 않았다.